전남 화순은 저에게 고향과도 같은 곳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사회생활을 대한 석탄공사 화순광업소에서 시작하신 아버지는 같은 회사에서 어머니를 만나 결혼을 하셨고 저와 여동생을 낳으셨어요. 저의 어릴 적 기억의 첫 번째 집은 화순군 천운 마을에 있었던 대한 석탄공사 사원아파트였고 그곳에서 아버지가 서울 본사로 발령이 나시던 1986년까지 살았습니다. 

어릴 적 기억을 추억하고 싶어 3, 4년마다 한 번씩 화순과 천운 마을을 들르곤 하는데, 여행을 시작하고 나서야 제가 살던 화순에 있는 멋진 장소들을 알게 되었어요. 오늘은 지난 화순 적벽 투어 이야기에 이어서 화순 랜선 여행 두 번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1. 야사리 느티나무

이서 커뮤니티 센터 입구
이서 커뮤니티 센터 건물

지금은 코스가 조금 바뀌었지만 제가 방문한 2018년도의 화순 적벽투어 코스에는 노루목적벽 관람을 마친 후 이서 문화센터로 이동하여 야사리 느티나무와 은행나무를 관람하는 코스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현재는 적벽 투어를 마친 후 바로 이용대 체육관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투어가 마무리됩니다.) 적벽 투어를 하기 전까지 화순에 야사리라는 곳이 있다는 것도 몰랐었는데 당시 코스에 이곳이 포함되어 방문하여 이곳을 알게 된 것이 개인적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서 커뮤니티 센터 입구와 야사리 느티나무
야사리 느티나무 기둥

적벽 투어를 마치고 이서 문화센터에 도착하면 딱 봐도 수령이 오래되어 보이는 커다란 나무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 나무가 야사리 느티나무인데 두 주(柱)의 나무가 나란히 뿌리를 내려 한그루의 나무처럼 보이는 것이 특징입니다.

 

야사리 느티나무 전경

높이 약 25미터, 나무의 가슴둘레를 뜻하는 흉고(지상에서 약 1.2미터)의 둘레는 4.9~5.3미터, 나무의 가지와 잎이 많은 곳을 뜻하는 수관 지름은 약 14~19미터의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이 느티나무는 370~400년 정도의 수령을 가진 것으로 예상된다고 합니다. 이 나무는 마을의 할머니 당산나무였다고 하며 남쪽으로는 최근 새로 심은 할아버지 당산나무가 있고 지금도 당제를 지내고 있다고 하네요.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197번지에 위치한 야사리 느티나무는 기념물 235호로 지정되어 관리를 받고 있습니다. 

 

2. 천연기념물 303호 야사리 은행나무

야사리 농기구 수리점
화순 이서우체국

국가지정 천연기념물 303호로 지정되어 있는 야사리 은행나무는 이서 문화센터 입구 인근의 화순 이서우체국 인근에 위치합니다. 주소는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182-1번지이며 은행나무를 보기 위해 걷는 길에서 만날 수 있는 농기구 수리점의 모습은 어릴 적 화순에 살았을 때의 기억을 잠시나마 되살려 주기도 했습니다.

 

야사제1교와 이서천
야사제1교와 이서천

이서 우체국 앞에서 오른쪽을 향하면 왼쪽으로는 작은 하천이 흐르고 정면에는 마을 한가운데 높게 뿌리를 내린 야사리 은행나무의 웅장한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좌측에 흐르는 하천은 이서천이며 동복호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야사리 느티나무와 규모를 견주어 봐도 어느 나무가 더 큰지 가늠이 쉽게 되지 않을정도로 큰 야사리 은행나무는 현재 국가지정 천연기념물 303호로 보호받고 있다고 합니다. 이 거대한 은행나무는 조선 성종 때(1469년~1494년) 이곳에 마을이 형성되며 함께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고 하니 수령은 약 700년 정도인 오래된 나무인 셈이죠. 오래된 나무이다 보니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도 많은데, 나무 인근에 세워진 안내문에는 '철 따라 자태를 바꿔가며 국운의 융성과 화평을 알리고, 때로는 우는 소리를 내어 전란을 비롯한 나라의 불운을 알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이곳 마을 사람들은 은행나무를 신목으로 여기며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에 당산제를 지내며 나무를 기린다고 하네요. 

야사리 느티나무와 더불어 가까운 위치에 이렇게 오래되고 커다란 나무들이 오랜 시간을 버티며 지금까지 훌륭하게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개인적으로 놀랍기도 했습니다.

 

3. 온화한 석불의 미소를 우연히 만났던 '화순 대리석불입상'

대리석불입상 주차장

화순 대리 석불입상은 정말 우연히 알게 된 곳인데, 화순 적벽 투어의 모든 순서를 마치고 돌아온 이용대 체육관에서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기 위해 이동하던 중, 길가에 서 있던 주차장 안내판 하나가 눈에 들어와서 차를 멈춘 곳입니다. (두 번에 걸쳐 방문한 사진들로 소개하기 때문에 사진 상의 계절이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대리석불입상 주차장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대리 355에 위치한 이곳은 이용대 체육관 바로 옆인데 체육관을 나와 좌회전을 했다면 아마 지금도 알지 못하는 곳이지 않을까 생각이 되기도 합니다. 처음 대리 석불 입상이라는 이름을 보고 '대리석으로 만들었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의 지명이 '대리' 이더군요. 이 석불은 문화재 자료 243호로 지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화순 대리 석불입상
화순 대리 석불입상 안내문

차에서 내려 안내문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석불의 위치가 참 생뚱맞다 라는 것이었어요. 그도 그럴 것이 보통 석불이라면 절이나 그 주변에 위치하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이 주변은 온통 논밭에 커다란 나무 두 그루만 덩그러니 서 있는 길가였거든요. 석불은 논 방향을 향하고 있어 주차장에서는 뒷모습을 보게 되어 있습니다.

 

화순 대리 석불입상과 일출

새벽에 방문했던 두 번째 방문에서야 석불의 방향이 동남쪽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떠오르는 태양과 두 그루의 나무 그리고 석불의 뒷모습의 조화가 너무나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대리석불입상이 바라보는 곳은?
화순 대리석불입상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의 저는 여행 사진작가가 되겠다며 잘 다니던 회사를 막 그만뒀을 때였어요. 막상 회사를 그만두긴 했는데 달랑 카메라 하나 들고 사진을 찍으러 다닌다고 여행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겉으론 다 잘될 거라며 괜찮은 척을 했지만 마음속에는 항상 불안함이 자리 잡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차를 멈춘 곳에서 만난 대리석 불입 상의 미소를 보는 순간 묘한 안심이 되는 느낌을 받았고요. 

그저 저에게 '괜찮아, 다 잘될 거야'라는 말을 하는 듯한 미소를 보면서 가슴속으로 '꼭 여행작가로 성공해서 다시 돌아올게요'라는 약속을 했었는데, 그로부터 약 1년 후 저는 아직 성공은 하지 못한 채 방문을 했지만 그 미소는 여전히 저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대리 석불입상 시선 방향
화순 대리석불입상 돌탑

누가 무슨 의도로 이 석불을 조각했는지, 왜 이곳에 석불을 세웠는지는 지금 알 수 없다고 합니다. 단지 석불의 위치가 전남 보성과 화순을 지난 길목으로써 이 길을 지나는 사람들이 석불을 쉽게 접하며 개인과 동네의 안녕을 위하려는 목적으로 세워진 것이라고 추측한다고 하네요.

 

화순 대리석불입상의 미소

지금도 화순 대리에 온화한 미소를 띠고 서 있을 석불을 다시 만나기 위해 조만간 다시 한번 화순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4. CNN이 선정한 대한민국에서 꼭 가봐야 할 곳, '화순 세량지'

화순 세량지 주차장
세량지 입구

화순 세량지는 워낙 유명한 곳이라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것 같아요. 특히 사진에 취미를 가졌거나 사진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출사를 다녀오는 곳이기도 할 것 같은데요, 수면에 비친 반영의 아름다움으로 2012년도에 미국 CNN에서 대한민국에서 꼭 가봐야 할 50곳 중 한 곳으로도 선정한 곳이기도 합니다. 817번 국도 남쪽 방향으로 차를 몰면 칠구재 터널을 만나게 되는데, 터널을 지나면 잠시 후 세량지 주차장으로 빠지는 도로를 만날 수 있습니다. 

 

세량지로 올라가는 길, 경사가 심하지 않아요.

도로 아래를 지나는 작은 터널을 지나면 근래에 정비한 듯한 공원이 눈에 들어오고 세량지로 올라가는 길로 이어집니다. 광주에 거주하는 사촌 동생의 말에 따르면 얼마 전까지 세량지 바로 앞까지 차로 이동이 가능했었지만, 저희가 방문했을 때는 주차장과 연결되는 터널에 차량 통행을 막는 차단봉이 설치되어 걸어서만 이동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오르는 경사가 심하지 않고 완만하며 거리도 멀지 않아 세량지로 향하는 길은 어렵지 않았어요.

 

평일 새벽시간은 한산한 세량지

오르막의 끝에 다다르면 넓은 보가 눈에 들어옵니다. 인터넷에서 세량지를 검색하면 수많은 사진사들이 빈틈없이 자리를 잡고 사진을 촬영하는 사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평일 새벽시간에는 먼저 오신 사진사분 한분만 계셔서 편하게 세량지의 모습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세량지의 새벽

구름이 많았던 날씨가 조금은 아쉬웠지만 쉽게 올 수 없는 곳이다 보니 사진을 촬영하는 시간이 즐겁고 설레기만 합니다.

 

세량지 둘레길 데크
세량지의 새벽

좌측으로는 나무 데크가 있어 또 다른 각도에서 세량지를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수면 위로 올라오는 물안개도 만나 볼 수 있었는데 금세 없어져 버려서 아쉬웠습니다.

 

세량지의 새벽

날이 점점 밝아지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카메라에 담긴 세량지의 모습도 달라집니다. 단풍으로 물드는 늦가을에 온다면 더욱 멋진 사진을 담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코로나가 진정이 된다면 올해 가을에 다시 한번 방문해 볼 생각입니다.

 

5. 화순 랜선 투어의 마지막, 화순역

화순역사
화순역사

화순역은 경전선 구간에 있는 작은 역입니다. 대한민국에 3개뿐인 사유 철도, 화순선이 분기하는 역 이기도 한 이곳은 사실 볼만한 무언가가 있는 역은 아니에요. 단지, 어릴 적에 이곳을 지나고 이용했던 기억을 되새겨 볼 겸 방문한 곳입니다. 

 

화순역사
화순역 능주 방향

철로 앞에 서서 잠시 어릴 적 기억을 추억해 봅니다. 기억속의 화순역 건물과는 다르지만 광주 어린이 대공원으로 소풍을 가기 위해 기차를 기다렸을 건너편 승강장, 능주 방향으로 분기되어 화순광업소로 이어지는 화순선은 지금은 없어진 제가 살던 집, 석공아파트 2동 203호 베란다에서도 기차가 오가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기억들. 이젠 머리속에 떠오르는 당시 기억들은 더 이상 영상처럼 이어지지 못하고 한컷 한컷의 스틸 사진처럼 떠오를 정도로 오랜 시간이 흘렀네요.

 

광주 민주화항쟁 사적비
광주 민주화항쟁 사적비
광주 민주화항쟁 사적비

그런데 그저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 방문한 이곳에서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화순역 광장이 518 민중항쟁사적 이더라고요. 1979년 1월 생으로 518 당시 갓난 아기 였던 저와 저희 가족은 518 광주 민주화 항쟁 때, 광주와 매우 가까운 화순에 거주하다 보니 어릴적 아버지에게 당시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종종 있었는데요, 계엄군에 저항하기 위해 무기와 화약이 필요했던 시민군 일부는 화순 탄광에 석탄을 캐기 위한 용도로 쓰이는 다이너마이트를 확보 하기 위해 화순 광업소에 찾아왔다고 합니다. 사측에서는 미리 그 사실을 알고 화약과 다이너마이트들을 지하 깊숙한 갱도로 피신시킨 일도 있었다고 하네요. 우리나라 민주화 과정의 아픈 역사인 광주 민주화운동의 흔적을 어릴적 소풍 갈 때 기차를 탔던 화순역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전남 화순은 크고 유명한 관광지는 아니지만 코로나로 인해 언택트 일상이 보편화돼버린 요즘이다 보니 숨어 있는 우리나라의 여행지를 소개할 수 있는 기회도 오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가 어서 빨리 진정되어 저의 어릴 적 고향인 화순을 다시 방문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ps.

-. 제 돈 내고 직접 다녀온 후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개인의 생각과 취향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 말씀드립니다.

-. 본문 내용 중 오류나 틀린 정보가 있을 경우 알려주시면 확인 후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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